정부가 살려야할 건 ‘대한민국 조선산업’
정부가 살려야할 건 ‘대한민국 조선산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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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울산지역 정치권이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부를 향해 한마음으로 외치는 소리가 있다. 정부의 ‘공공선박 발주’ 대상에 현대중공업도 포함시켜 달라, 다시 말해 대우해양조선뿐만 아니라 위기를 똑 같이 겪고 있는 현대중공업에게도 회생의 기회를 달라는 소리다.

가장 절박한 목소리는 지난 8일 동구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협의회의 회견문에서 읽을 수 있었다. 협의회는 이날 “현대중공업의 비리 행위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고사 직전인 중소기업과 주민을 위해 현대중공업에도 공공선박 발주를 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협의회는 또 “이러한 우리의 요구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재벌의 비리를 눈감아 달라는 것은 아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말만 들은 일반 국민들 중에는 무슨 말뜻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분이 많을 것이다. ‘재벌의 비리’와 ‘공공선박 발주 금지’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제를 알기 쉽게 푸는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위키리크스 한국(WikiLeaks Korea : 내부고발을 통한 폭로전문 인터넷사이트)’의 5월 21일자 ‘WIKI수첩’도 그 중의 하나다. WIKI수첩은 현대중공업이 공공선박 발주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부정당업자’로 지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현대중공업의 잘못’이란 과거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주 당시 현대중공업이 한수원 직원에게 뇌물 17억원을 건넨 사건을 말한다. 사건 전모가 드러나자 정부는 현대중공업을 ‘부정당업자’로 지정했고 대법원도 현대중공업의 항소를 기각,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 때문에 현대중공업은 2019년 11월까지 국가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에 입찰할 자격이 제한되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협의회와 지역 정치권, 동구와 울산시, 그리고 지역 상공업계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울산지역의 경제 사정이 예사롭지 않은 만큼 현대중공업에 채워진 ‘부정당업자’란 족쇄를 정부가 정치적 차원에서 풀어(유예해) 주기를 바란다는 탄원인 셈이다.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협의회 회원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국민청원을 진행 중”이라고 전한 WIKI수첩은 “업계 내에서는 공공선박 발주 대상 기업에서 현대중공업이 제외된다면 특정 회사가 수주를 독점해 가격 인플레와 품질 저하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참고로 정부는 얼마 전, 2019년까지 5조5천억원을 들여 40척 규모의 공공선박 발주를 추진한다는 ‘조선업 발전전략’을 확정, 발표한 바 있다. WIKI수첩이 말하는 ‘특정 회사’란 산업은행이 관리하는 ‘대우조선해양’을 가리킨다.

일반 조선업체와는 달리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과 함께 잠수함과 이지스함 등 일부 특수선의 건조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지스함의 경우, 1호 ‘세종대왕함’과 3호 ‘류성룡함’은 현대중공업이 건조했고 2호 ‘율곡이이함’은 대우조선이 건조했다. WIKI수첩은 “이 때문에 정부가 일부 부문(특수선 건조)의 사업을 입찰경쟁 없이(=현대중공업을 배제한 채) 대우조선해양과 수의계약으로 진행할 경우 가격인상과 품질저하 문제가 생길 것이란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또한 “특히 현대중공업을 배제할 경우 대우조선해양이 산업은행의 관리 하에 있는 만큼 정부에서 ‘일감 몰아주기’에 나선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실제로 지난해 현대상선이 발주한 4천700억원 규모의 초대형 유조선(VLCC) 5척은 모두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했고, 현대상선 역시 대주주가 산업은행으로 대우조선과 같다.”고 덧붙였다.

WIKI수첩은 결론삼아 이렇게 말했다. “이지스함, 잠수함 등은 현대중공업만이 갖고 있는 강점인 만큼 군함과 같은 특수선 부문에서 현대중공업의 입찰 제한을 유예해 주는 것도 운영의 묘가 될 수 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덧붙였다. “정부가 살려야 할 것은 대한민국의 조선 ‘산업이지 대우조선해양 하나만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WIKI수첩이 지적했듯이 현대중공업이 ‘부정당업자’로 지정된 것은 전적으로 현대중공업의 잘못이다. 그러나 울산에 본사를 둔 현대중공업의 부침은 울산 지역경제의 부침과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다는 지역적 특수성을 정부는 감안했으면 한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울산 몫의 국가예산 361억원 중 1/3인 131억원이 동구에 배정될 예산이다. 그만큼 울산 동구의 사정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딱한 처지에 놓여있다. 정부가 이 특수성을 각별히 감안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대중공업의 족쇄는 정치적으로 풀 필요가 있다.

차제에 현대중공업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역 정치권과 상공업계, 지자체와 사내협의회까지 나서서 이구동성으로 현대중공업 지원을 외치는 마당에 현대중공업은 어찌하여 감사하다거나, 죄송하다거나, 최대한 자구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말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있는가? 이번에는 현대중공업의 책임 있는 당사자가 직접 나서서 대시민 성명이라도 낼 차례가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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